[허준혁한방] 재외동포청이 아니라 세계한인처

대통령선거기간 중 의아했던 게 있다. 왜 각 정당들이 대통령산하의 ‘재외동포위원회’나 국무총리산하의 ‘재외동포처’가 아니라 한결같이 재외동포‘청’을 공약으로 내세우는가였다.

물론 쉬운 단계부터 하자는 의지였을 수도 있지만, ‘처’와 ‘청’의 차이 등 정부조직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부족도 일정부분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동안 재외동포들과 재외동포단체들이 주창해온 ‘동포청’은 과거 교민청, 교포청처럼 동포전담기구의 필요성을 상징하는 명칭이지 정부조직법상의 명칭이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행히 재외동포전담기구 신설에는 정치권에서도 공감이 이루어진만큼 이제는 정부조직법상의 위치에 대해서도 구체적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한다.

동포청과 관련해서는 이미 1990년대초 김영삼 문민정부 당시 ‘교민청’과 함께구체적 논의와 실무적 검토가 있었다. 그러나 광범한 재외동포업무를 ‘청’이라는 협소한 단일기구에서 소화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컸다.

또 1991년 한소수교와 1992년 한중수교 등 외교적 정세변화에 따른 ‘고려족’과 ‘조선족’ 등의 문제로 야기될 수있는 외교적 마찰가능성, 일본의 경우 ‘민단’과 ‘총련’의 문제, 그리고 부처간 갈등 등을 우려한 일각의 반대도 있었다.

그렇지만 무한정 미룰 수 없어 ‘과도기적’인 기구라도 우선 출범시키로하고 1996년 5월 재외동포정책위원회에서 정부조직법상 ‘기타 공공기관’에 해당하는 ‘재단’의 형식을 갖추기로 합의했다. 그에 따라 97년 7월 재외동포재단법 시행령을 공포하고 그해 10월 재외동포재단이 출범하게 된 것이다.

굳이 30여년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재외동포청’이 새삼스러운 것도 과감한 결정도 아니라는 것이다. 30여년을 기다려 그때와 똑같이 돌아간다는 건 참으로 우매한 일이다.

재외동포재단이 그 세월동안 겪어온 시행착오와 애로, 그리고 축적해온 노하우들을 제대로 된 그릇에 담아 효율성을 극대화해야한다.

그렇다면 청은 어떤 한계점이 있을까?

첫째, 정부조직법 제7조 제4항은 각 행정기관 장관・차관은 중요 정책수립에 관해 소속 청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부령을 통해 장관의 소관 청장에 대한 지휘 규정을 명문화해두고 있다.

이는 행정부의 국회에 대한 책임 때문이다. 국회는 국무위원인 장관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어 해임건의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청장에 대해서는 소관 부의 장관이 책임지고 감독하도록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인사, 예산, 조직, 법령 제정・개정 등과 같은 중요한 행정 활동들도 청장은 장관의 관리감독을 받거나 소속 부 조직을 경유하도록 되어 있다. 해당 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 업무 자체가 변경되거나 지연, 또는 무산될 가능성이 상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청은 소관 부가 얼마든지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체계이다. 재외동포재단이 동포청으로 되더라도, 새롭게 차장 한 명을 두는 정도이다. 홍보적 효과는 어떨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거의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재외동포’청’으로 가닥잡혀질 가능성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처’든 ‘청’이든 신설동포전담기구 설립과 관련하여 몇가지 문제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청’이든 ‘처’든 오히려 문턱이 높아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재단은 ‘기타 공공기관’이라 기획이사나 사업이사 등 외부인사 영입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그러나 ‘청’이 되면 옥상옥인 부의 영향도 받게되어 동포들의 참여와 소통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둘째, 재단업무를 완전 승계하는 것인지 선별적 승계인지도 중요하다. 재단의 주요업무는 크게 지원사업과 초청사업이다. 1,500여개에 달하는 한글학교나 한인회, 세계한인회장대회와 세계한상대회 등에 대한 지원사업과 해외학생들의 모국연수를 위한 초청사업들이 그것이다.

‘처’든 ‘청’이든 승격되면 지원과 초청규모가 더 커져야한다는 것이 상식적인 기대와 당위이다. 그럼에도 규모가 그대로거나 신청이 더 까다로워진다면 굳이 지금보다 문턱이 더높은 전담기구를 만들 이유는 없다.

셋째, ‘처’든 ‘청’으로의 승격은 동포를 위한 전담기구로의 확대강화가 되어야지, 혹여라도 공무원 인사적체해소를 위한 방편이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점이다.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하고 재외동포들과의 소통이 원활한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대거 확보되어야한다.

마지막으로 명칭의 문제이다. 미주-유럽-아중동-중남미-대양주 등에서 재외동포들은 한인회총연합회나 한상총연합회 등을 통해 소통과 교류를 해왔다.

전 세계 한인단체들이 각 거주국과 거주대륙의 이름을 앞에 내세우지만, 재외동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곳은 없다. 미주 재외동포연합이나 유럽 재외동포연합, 아중동 재외동포연합, 대양주 재외동포연합이라는 단체명은 없다.

세계한인회장대회나 세계한상대회, 세계한인언론인대회, 세계한인체육대회는 있지만 세계재외동포대회나 세계재외동포상공인대회, 세계재외동포언론인대회, 세계재외동포체육대회는 없다.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이라고 하지 우리나라라고 공식명칭하지는 않는다. 세계화의 개념이 부족했던 시절의 ‘우리동네 뒷산’ 등의 명칭 차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재외동포’라는 주관적 용어보다, 고유명사적인 ‘세계한인’이라는 표현과 표기가 타당하다. 이미 정부도 10월 5일을 ‘재외동포의 날’이 아니라 ‘세계한인의 날’이라 칭하고 있다.

이제는 의지의 문제이다. 시간은 충분하다. 12개에 달하는 재외동포 관련법률을 통폐합하고 재외동포기본법(세계한인기본법)에서 정리해야한다. 어차피 만들기로 한거, 이참에 250만 이민자 문제까지 아우를 수 있게 제대로 만들어야한다.

현재 외교부는 해외거주 재외동포를, 법무부는 국내입국 재외동포를 따로 업무관리하고 있는 시스템을 ‘세계한인처’에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어야한다.

외교부, 법무부, 통일부, 행안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 국가보훈처, 병무청 등으로 분산되어있는 업무를 국무총리산하의 ‘세계한인처’에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어야한다

현재의 외교부 영사실과 재외동포재단을 단순히 합치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놓고 “이럴바엔 차라리 재외동포재단을 그대로 두지”라는 비판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이제라도 ‘세계한인처’로 뜻과 지혜를 모아야한다.

칼럼기고: 허준혁 유엔피스코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