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초대석 후기] CJ그룹 글로벌 경영고문 정영수 UN피스코 의장의 “ 나의 사색”

정영수 회장을 대면해서 첨 뵌 것은 지난 5월 유엔피스코 개소식 행사 엘리베이트 안 이었다. 개소식 참석을 하러 유엔피스코 본부 엘리베이트를 탔다. 한 중년 신사분이 동승하셨는데 그 분이 누구인지 그 당시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 눈길도 마주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있다 같은 층, 같은 입구로 들어서는 그를 보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온 분이구나 생각했었다. 그 때 그 분이 누구신지 알았더라면 ….^^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분의 고향이 내 부모님과 같은 진주이시라, 그리고 강안나 사모님이 진주여고 출신이라 하셔서 더 관심이 갔다. 내 이모할머님과 친척언니 몇 분이 같은 학교를 다니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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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6일 UN 피스코가 주최하는 명사 초대석이 유엔피스코 회의장에서 개최 되었다.  유엔피스코는 매달 “성공한 한인지도자 명사를 초대해 그의 삶과 철학, 인생에 대해 나눔을 하는 행사를 시작 했다. 그 첫번째 명사로 CJ그룹 글로벌 경영고문 정영수 UN피스코 의장이 “ 나의 사색” 이라는 주제로 그의 인생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정영수 고문은 싱가포르 한인회장과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한국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싱가포르 한상으로 2016년 부터 청년 취업 지원과 장학 사업 등을 전개하는 글로벌한상드림의 이사장도 맡고 있다. 그는 CJ그룹 글로벌경영 고문으로서 현재 CJ그룹의 동남아시아 지역 전략 수립 자문 등을 담당하고 있다.

유엔피스코 명사초대석을 통해 풀어 놓은 정영수고문의 이야기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하지만 깊고 뚜렷하게 각인되어 감동을 주는 것은 방향성 잃은 이 시대에 등대 같기도 한 길잡이가 되고 또한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 부모님과 우리 세대를 공감으로 두루 아우러는 감동 때문일 것이다.

경영전문가로서는 흔치않게 3권의 수필집을 낸 수필가로서의 직함을 달고 있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가 어린시절 부터 얼마나 꽃을 좋아했는지를 보면 아, 그렇겠구나~ 싶어진다. 그의 저서 “멋진 촌놈” 을 보면 꽃 저마다에 대한 순수한 표현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꽃 예찬가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정서어린 감성이 그 자신을 따뜻한 인성을 가진 사람이 되게했고 가정과 인간관계에서도 꽃을 키우듯 정성을 다하게 하지않았나 싶어졌다.

정영수 고문은 대한민국이 해방되던 해 경상남도 진주에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와 시장에서 양품점을 운영하셨던 어머니 사이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전쟁 통에 가난했던 그 시절에 그나마 남들보다는 어렵지 않은 유년을 보냈다. 19살 고등학교 시절에 조국의 가난한 현실을 보며 나는 꼭 열심히 공부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상공부장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시절 까지 한번도 외국인을 본 적이 없음에도 불고하고 남들보다 뛰어나기 위해서는 수학보다는 외국어를 잘 해야 겠다는 판단으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었고 그것이 훗날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하는 일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1977년 해외로 나가 홍콩에서 주재원 생활을 시작하다가 1984년에 싱가포르에서 법인장 생활을 마친 후 비디오와 오디오 테이프를 판매하는 ‘진맥스’사를 창업했다. 동남아는 물론 영국과 미국에 이르기 까지 물불 가리지 않고 뛴 덕분에 회사는 성장가도를 달리게 되었지만 결국 일본 경쟁사의 모함으로 파산직전 까지 내몰리기도 하는 극한의 힘든 상황을 겪기도 했다.

이 때 경제적으로 위기에 있었던 정 고문을 도우려는 처가의 제안을 거절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재기해 일어서려는 남편으로서, 기업인으로서 자신만의 신조로 위기를 극복해 내고 마침내는 1991년 수출산업포상을 받을 만큼 경이로운 성공을 이루어 내게 된다. 그를 이토록 성공적인 기업인으로 서게한 근본에는 그만의 특별하고 굽히지 않는 인생신조와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4가지 그의 신조를 보면 첫째 부지런함으로 지금도 그는 오전 5:30 분에 기상해서 10:30에 침대에 들어가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둘째는 모든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빠른 판단력과 셋째는 신용을 곱았다.

그는 지금껏 사업을  하면서 한 번도 약속을 어기거나 돈이 없는 가운데서도 월급을 늦게 준 적이 없다고 했다. 그 결과는 현재 자신이 45년째 살고 있는 싱가폴에서 널리 신용을 받는 바탕이 되었다.  “선섬낙수 처럼 살아라”…  외국인에게 신용을 잘 지키지 않으면 결국 한국인으로서 전체가 신용을 잃게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정 고문은 일별, 주별, 월별,  분기별, 단기별, 1년, 3년, 5년 …20년 등으로 97세 까지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그것을  실천하며 산다 했다. 그 세밀한 계획 덕분에 지금 까지 100가지 일을 계획 했다면 95가지는 성공적으로 다 이루어 냈다고 말 한다.

또한 그는 “졸면 죽는다” 라는 슬로건을 세우고 가정이나 내가 속한 단체, 내 사업과 관련 해서 한번도 정신적으로 헤이해지거나 졸아본 적이 없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했다.

넷째 인연을 소중히 한다. 정영수 고문의 호(號)가 연당(延堂)이다. 이을 연(延)에 마당 당(堂)을 쓴다. 마당은 인연을 만들고 소통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에 그는 늘 인연의 장을 만드는 일을 자처한다. 한번 명함을 받으면 세 번째 만남까지는 상대방을 꼼꼼히 살피고 받은 명함에 기록을 남긴다고 말한다. 세 번 만남 이후에도 변함이 없으면 그 인연을 소중히 여겨 필연으로 만든다. 그리고 서로 도와주고 땡겨주고 밀어주는 필연의 관계로 만들어 간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인간은 인간과 더불어 사는 법입니다. 누군가를 진심과 사랑과 겸손으로 대하면 인연이 만들어지고, 그 인연은 필연으로 승화되기 마련이지요.  <‘70찻잔’ 中/정영수 저>”

그의 아름다운 신조이며 우리가 되새겨야 하는 정석의 처세술이다.

사업을 할 때에도 인연을 소중히 여겨 파트너를 고를 땐 첫째, 나의 철학과 맞는지 둘째, 보편적이고 타당성이 있는지 셋째, 배려하고 봉사하는 일인지 넷째, 나의 가족에게 욕되지 않는지 다섯째, 내 판단이 국가을 위한 것인지 등의 다섯 가지를 항상 기준으로 삼았다.

이런 그의 생활신조를 들으면서 나의 그것과 비교해 보며 많은 상념에 잠기게 했다. 보편적이고 타당하지 않은 것을 고집한 적은 없는지.. 배려와 봉사 보다는 내 이기심에 더 치중하지는 않았는지 … 단독적이고 독불적이지 않고 가족의 입장과 동의를 함께 고려 했었는지..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국한 하지않고 국가와 국익을 먼저 생각해 본 적은 있었는지 …

이런 모든 철학과 신조들은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잘 적용을 했다. 자신이 꽃을 가꾸고 대하는 그 마음을 상기하며 자식들에겐 그 이상의 것으로 가정교육을 했다. 어린시절 가게를 운영하시느라 어머니가 늘 집에 계시지 않으셨던 것을 허전해 했기에 부인인 강안나 여사는 아이들의 하교시간에 집을 비운 적이 없다 했다.

자신의 소신처럼 자녀들에게도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세 자녀 모두 다양한 외국어에 능통하다 했다. 무엇보다 감동이 되었던 것은 학업이 우수해 유수 미국 명문대학을 갈 수 있었음에도 굳이 한국문화와 정서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한국대학을 선택하게 할 정도로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정 고문의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조국사랑의 면모를 볼 수 있었던 점이다.

오늘 이 시대에 어느 학부모도 이런 상황에서 이런 선택을 조언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그의 세 자녀는 모두 훌륭한 글로벌 인재들로 성장해 사회에서 제 몫을 다 하고 있으며 특히 막내인 정종환 CJ 그룹 부사장은 CJ 그룹 이재현 회장의 맡사위로 현재 CJ 그룹 미주본부 부사장을 맡고 있다.  

오랜 외국생활을 했음에도 세 자녀들이 한국 대학에서 공부를 할 만큼 한국어 실력이 탁월하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도 미국에서 우리 자녀들에게 열정적으로 한국어 교육을 시켰지만 정 고문 자녀들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70 중반에 들어서는 정 고문 부부의 삶은 문학과 예술과 봉사의 삶으로 더 찬란해 지고 있다. 부부 모두가 글을 쓰는 시인과 수필가로 동행을 하고 있으며, 무엇 보다도 차세대를 위한 그의 관심은 10여 명의 발기인들을 모아 “싱가폴 한국장학회”를 설립하게 했고 현재는 글로벌한상드림장학재단 이사장에 취임해 있다. 그는 “장학금은 그냥 ‘돈’이 아니라, 누군가의 미래를 열어주는 ‘열쇠’이고, 누군가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마술”이라 표현 한다.

“내가 누군가의 작은 바람막이라도 되어 줄 수 있다는 것, 비단 내 아이들의 아버지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버지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내겐 너무도 큰 기쁨이자, 은혜요 감사였던 것입니다.”  

<’밖으로 밖으로, 신나는 인생’ 中/정영수 저>

과거는 지나간 역사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미스테리이니 현재를 선물이라 여기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뭐든 지금 해라. 지금 안하면 언제할지 모른다. ‘일체유심체’ 라는 말 처럼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려 준 그의 노년의 신조였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아내의 권유로 세례를 받고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일이다.” 노년의 이 신사는 그의 모든 꿈과 신조를 다시금 종교적 믿음 안에서 더욱 승화시켜 나가고 있는 듯 했다. 참으로 진솔하고도 짙은 감동의 여운을 오래 남겨준 명사의 사색시간 ( 나의 사색 Musings)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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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US-KOREAN / 정혜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