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의 대명사로 불리우던 배우 알랭 들롱(86세)이 안락사를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알랭 들롱은 법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에 거주하고 있으며, 1999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해 프랑스와 스위스의 이중국적자이기도 하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2015년 세계 80개국을 대상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의 통증치료와 그 가족의 심리적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의료시스템 등에 대해 비교평가하는 지표인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 순위를 발표했다.
영국이 100점 만점에 93.9점을 받아 1위를 차지했고, 한국은 73.7점으로 18위에 머물렀다. 상위 20개국 안에 아시아 국가는 타이완(6위), 싱가포르(12위), 일본 (14위)이었다.
영국이 ‘죽기 좋은 나라’가 된 비결은 호스피스 제도 때문이다. 정부가 완화의료에 대한 포괄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국가보건서비스(NHS)가 폭넓게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에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다양한 기부와 자원봉사 활동이 이뤄지기 때문에 환자들은 거의 무료로 호스피스를 이용하고 있다.
선진국에선 오래전부터 ‘슬로 메디신(Slow Medicine)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심폐 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영양 공급장치 등에 매달리지 않고 아기가 엄마 젖을 떼듯 천천히 약을 줄이며 임종을 맞겠다는 것이다.
안락사는 크게 적극적 안락사(euthanasia)와 조력자살(assisted suicide) 그리고 연명치료를 중지하는 수동적 안락사로 나뉜다. 한국에서도 2016년 1월에 통과돼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건수는 지난해 12월 21일 기준 114만4726건으로 늘었다. 또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서는 65세 이상중 89%가 좋은 죽음을 위해 스스로 삶을 정리한 후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존엄과 자기 결정을 중요시하는 추세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치료중단 강조가 우리나라 부모들의 정서상 자식이나 가족에 대한 미안함 등이 우선되는 것은 아닌지, 사회적으로는 고갈되는 국민연금이나 복지비용 등의 문제가 연계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한국인은 10명중 9명이 병원 등에서 객사한다. 2002년까지만 해도 병원 객사(43.4%)보다 재택 임종(45.4%)이 더 많았다. 그러나 다음해 역전된 이후 2017년에는 자택 임종이 14.4%로 줄었고, 병원 사망자 비율은 76.2%까지 상승했다. 특히 암 환자 등 중환자가 병원에서 사망하는 비율은 92.0%, 자택은 6.3%였다.
이렇듯 대부분의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다가 삶을 마감한다. 더 나은 죽음을 준비하기보다는 죽는 순간까지 죽음을 치료하겠다고 매달리는 것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한국인들은 평생지출하는 의료비의 절반을 죽기 전 한 달, 25%를 죽기 전 3일 동안 쓴다고 한다. 마지막 10년중 절반을 앓다 떠난다고 한다. 오래 사는 대신 오래 앓는 것이다. 수명이 늘어나는 대신 병석에 있는 기간도 그만큼 늘어났다.
죽음의 질을 따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느냐’라고 한다. ‘좋은 죽음’이란 ①익숙한 환경에서, ②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③가족 친구와 함께, ④고통없이 죽어가는 것이 기준이라고 한다.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마감하는 방식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행복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알랭 들롱’이라는 추억의 이름과 ‘안락사 결정’이라는 뉴스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기고: 허준혁 유엔피스코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