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의 천재피아니스트, 임윤찬

조성진의 뒤를 이어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 온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18·한국예술종합학교)이 18일(현지시간) 미 텍사스주 포트워스 베이스퍼포먼스홀에서 폐막한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을 기록했다. 2017년 제15회 콩쿨에서 선우예권이 첫 한국인으로 우승한데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인이 우승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부상금으로10만 달러(약 1억3,000만 원)의 우승 상금과 3년간의 월드투어 공연, 음반 발매 등의 지원을 받게 되며, 전 세계 클래식 팬 3만명이 참여한 인기투표 집계 결과에 따른 청중상(상금 2,500달러)과 현대곡을 가장 잘 연주한 경연자에게 주는 비벌리스미스테일러 어워드(상금 5,000달러)까지 차지해 3관왕이라는 영예를 안게됐다. 북미에서 가장 큰 대회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입상자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60년 역사의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 발표 후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임윤찬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전해졌다. “마음이 무겁고 걱정되는 마음이 크고 좀 믿기지 않는 느낌이에요.”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또한 최연소 우승자 소감을 묻는 질문에 “나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며 “이 콩쿠르를 통해 내 음악이 깊어지길 원했고 관객 마음에 진심이 닿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답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냉전 시절이던 1958년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해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리는 대회로 1962년부터 4년마다 열려왔다. 세계 3대 음악경연대회로 꼽히는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버금가는 권위를 인정받는 북미의 대표 피아노 콩쿠르다. 1962년부터 4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쇼팽 콩쿨처럼 피아노 부문에 한정된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1년 연기되어 치러진 이번 대회에는 51개국 388명의 피아니스트가 참가했는데이 가운데 예선을 통과한 30명이 본선 경연을 펼쳤다. 대회를 중계한 유튜브에선 일찌감치 그의 우승을 예상하는 댓글들이 달렸었다.

제16회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한 임윤찬이 17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베이스퍼포먼스홀에서 열린 결선 무대에서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고 있다. 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임윤찬은 천재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지만 지독한 노력형 연주자로 알려져 있다. 이번 대회 기간 중에도 매일 새벽 4시 반까지 연습했다고 알려졌다. “피곤했지만 절실함으로 악으로 버텼다” 라는 그의 말이다.

“좋아하는 곡으로 프로그램을 짰다”는 임윤찬은12명이 겨룬 준결선 리사이틀에선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 기교 연습곡을, 6명이 겨룬 결선 마지막 무대에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그가 연주한 리스트의 ‘초절정기교 연습곡’은 작곡가 슈만이 “이 작품을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는 사람은 리스트 그 자신뿐일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의 난곡으로 알려져 있다.

임윤찬은 연주 시간 65분에 걸쳐 이 연습곡 12 전곡을 쉬지 않고 연주했다. “리스트가 평생에 걸쳐 작곡한 곡인데, 한번에 연주하는 게 작곡가의 인생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지난해 10월 독주회에서 임윤찬은 이 곡을 인터미션 없이 연주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리스트 초절 기교 연습곡 12곡 전곡은 반 클라이번 유튜브 계정 연주 영상 중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임윤찬은 지난 14~18일 포트워스 베이스퍼포먼스홀에서 열린 결선 무대에서 콩쿠르 심사위원장인 마린 앨솝의 지휘로 포트워스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 C단조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D단조를 연주했다.

특히, 지난 17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는 신들린 듯한 강렬한 연주라는 평가와 함께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받았다. 트위터와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도 임윤찬의 열정적인 연주는 전 세계 클래식 팬들로부터 놀라움과 경탄의 화제가 되고있다.

지휘자 마린 알솝(66)은 “임윤찬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연주에서 18세의 어린 나이에도 이미 뛰어난 깊이와 눈부신 기교를 보여줬다”고 현지 매체에 밝혔다. 결선 연주가 끝난 뒤 무대 뒤에서 임윤찬을 안아주며 살짝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마린 알솝은 2019년 개봉한 영화 <더 컨덕터>의 실제 모델 가운데 한명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유명 교향악단의 첫 여성 상임지휘자가 되면서 ‘유리천장’을 깬 그는 14년 동안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지난해부터 빈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경연이 벌어진 포트워스 현지에서는 물론 반 클라이번 콩쿠르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연주를 감상한 이들은 새로운 스타 탄생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에 대해 임윤찬은 “그렇게 화제가 된 줄은 몰랐다”면서 “저는 그저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유산을 청중분들에게 잘 들려드리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제16회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한 임윤찬이 17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베이스퍼포먼스홀에서 열린 결선 무대에서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고 있다. 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18·기악과 2년)에 재학 중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음악 입문은 아주 평범했다. 한국 가정의 조기교육 열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듯 “악기 하나쯤 다루는 게 좋겠다”는 어머니의 권유로 7살 때 ‘동네 상가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일반적으로 음악전공인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늦게 피아노를 시작했고 또 집안에 음악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임윤찬은 언론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친구들이 태권도장에 다닐 때 아무것도 안 할 수 없어 아파트 상가에 있던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그러다 보니 음악이 좋아졌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런 임윤찬이 11세 때인 2015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를 했고 이후 2018년 세계적인 주니어 콩쿠르인 클리블랜드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2위와 쇼팽 특별상, 쿠퍼 국제 콩쿠르에서는 최연소 3위와 청중상을 수상해 세브란스홀에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

그 외에도, 예원음악콩쿠르 1위, 음악춘추 콩쿠르 1위, 모차르트한국콩쿠르 1위 수상 등 이미 국내 유수의 콩쿠르에서 수상했으며, 2019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는 최연소 1위와 청중상, 박성용영재특별상까지 수상하며 대회 3관왕에 올랐다. 중학교 과정인 예원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고교 과정을 건너뛴 채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유학 경험이 전혀 없는 국내파로, 현재 한예종 음악원에서 피아니스트 손민수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임윤찬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 측이 수상식 직후 주최한 현지언론 회견에서는 “오로지 음악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아직 배울 게 많다”며 겸손해했다.

그는 “(제 꿈은) 모든 것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서 피아노 하고만 사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수입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고 있다)”면서 “이번 콩쿠르 출전 이유는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성인이 되는데 그 전에 제 음악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콩쿨을 통해 확인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음악 앞에서는 모두가 배우는 학생이고, 제가 어느 위치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콩쿠르 출전을 통해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임윤찬은 콩쿠르를 위해 포트워스 머물면서 “하루에 12시간씩 연습하느라 돌아다니지 못했다”고 했다. “새벽 4시까지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숙집 주인분들에게 감사하다. 한국에선 아파트에서 살아서 4시까지 연습하면 큰일 난다”고 하자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해외에서 공부할 계획이 있느냐는 물음에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한국에 훌륭하신 선생님이 계신다. 앞으로 선생님과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했다.
임윤찬이 언급한 ‘선생님’은 한예종 손민수 교수다. 손 교수는 임윤찬이 12살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지도해오고 있으며 임윤찬은 “제 선생님이 내게 가장 많이 영향을 끼쳤다”면서 손 교수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손민수 교수는 임윤찬에 대해 “음악에 몰입해 사는 모습이 마치 18~19세기에 사는 듯하다”며 그에게 ‘시간여행자’란 별명을 붙여줬다. 손교수는 임윤찬을 ‘연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평한다. 평소 말이 드물고, 목소리도 작지만 무대에만 오르면 폭발적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반 클라이번 콩쿨은 2009년에 손열음이, 2005년에 양희원(미국명 조이스 양)이 각각 2위에 올랐었다. 이번 대회 준결선에 한국 피아니스트 김홍기(30), 박진형(26), 신창용(28)도 올랐었지만 , 임윤찬만 결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인의 음악적 기량이 세계적임이 다시 한번 알려지는 쾌거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