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혁한방] 입춘과 보리밟기

입춘의 의미

24 절기 중 첫 번째 절기는 ‘입춘(立春)’이다. 보통 2월 4일~5일 사이에 입춘이 시작된다. 드물지만 3일인 경우도 있는데 올해 입춘이 2월 3일이다. 태양의 황경(태양 운동 궤도를 세로로 횡단한 경도)이 315도일 때 입춘이 시작된다. 올해 정확한 입춘 절입시간은 3일 오후 11시 10분이다.

전통역법에 따르면 설날이 아니라 입춘이 뱀띠해의 시작이다. 2025년생이라도 입춘 전에 태어났다면 갑진년 용띠, 입춘 후에 태어나면 을사년 뱀띠가 된다. 더 엄밀히 따지면 입춘시에 따라 달라진다.

입춘을 들어온다는 의미의 들 ‘입(入)’이 아니라 세운다는 의미의 설 ‘입(立)’을 사용한다. 들어오고 나간다는 식의 이동이 아니라 때가 되어 봄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준비되어 온 것들의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모죽은 5년 동안 뿌리내리다 어느 순간 쭉쭉 뻗어 올라간다. 모죽처럼 시련을 견디며 준비해 온 모든 것들을 활짝 꽃 피워 나가야 하는 것이 입춘이다.

‘보리의 이불’과 보리밟기

시골 보리밭에 내린 눈은 ‘보리의 이불’이라고 한다. 눈이 많으면 풍년이 든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입춘에 내린 눈이 녹고 보리밭에 파릇파릇 새싹이 올라오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보리밭으로 나가 보리를 밟는다.

보리의 어린잎에 상처를 주어 겨울이 오기 전에 지상으로 싹이 자라는 것을 억제하고, 상처로 수분이 많아지기 때문에 세포액농도가 높아져 추위를 견디는 힘을 더 강하게 해 주기 위함이다. 또 뿌리가 땅속에 더 깊게 파고들 수 있게 한다.

그렇게 해줘야 초겨울부터 이른 봄에 걸쳐 급속한 냉각 현상으로 발생하는 기상재해, 즉 동상해(凍霜害)에 대한 저항성도 높이고 주변 땅속으로부터 수분을 흡수하는 능력도 키워줘 봄철 가뭄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눈 속의 보리도 애처롭고 새순을 밟아 버리는 것도 애처롭지만 이렇게 밟아주어서 웃자람을 막아주지 않으면 보리가 입춘추위를 견뎌내지를 못한다. 그렇게 오히려 고통을 줘서라도 겨울을 지나고 나면 보리는 더욱 강인하게 봄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의 보리밟기’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7년 만의 최저기온 입춘을 맞으며 어쩌면 어설픈 웃자람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삶을 반추해 본다. 재충전의 고통과 시련을 ‘내 인생의 보리밟기’로 승화시켜 더욱 풍성한 알곡과 보다 나은 내일을 준비해 나가야겠다.

‘새봄 큰 행운'(입춘대길/立春大吉)과 ‘좋은 일 가득’하시길(건양다경/建陽多慶) 기원드린다.

칼럼: [허준혁한방] 입춘과 보리밟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