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혜란
누구에게나 어린시절을 추억하게 하고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집집마다의 별미가 있을 것이다.우리집에도 우리집 만의 특별한 별미가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대 부터 특별히 좋아하셨던 식혜 ( 경상도에선 단술 또는 감주라고 한다) , 단팥죽 그리고 고들빼기 김치이다.
우리집에서 식혜는 거의 1년 내내 떨어진 날이 없을 만큼 늘상 냉장고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경상도식 우리집 단술은 서울식의 식혜와는 생김새가 사뭇 다르다. 서울의 식혜는 뽀얗게 맑은 물에 밥알 몇알이 동동~ 그림처럼 떠 있는 반면 감주나 단술은 색깔도 거무스럼하고 밥알도 수북하리 만큼 많은 양이 그릇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그래서 철 없던 어린시절 우리 엄마는 솜씨가 없어 매번 식혜 만들기를 실패한다고 생각했었다.
색깔이 거무스럼한 것은 설탕 대신 엿기름을 많이 넣어 자연의 단 맛을 내기위함인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엄마 Sorry ~~~ ^^
그리고 단팥죽이다. 어릴 적12월 동짓날이 되면 형제들이 올망졸망 밥상에둘러앉아 손바닥으로 동글동글 새알을 빚었던 생각이 난다.
첫 날은 따뜻한 단팥죽을 먹었지만 남은 팥죽은 큰 냄비채로 장독위에 올려놓으면 그 뒷날은 차겁게 식은 단팥죽과 깨물어 먹는 새알이 또 다른 입안의 행복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집 밥상에 자주 올랐던 고들빼기 김치… 어린 생각에 씁씁한 뒷 맛과 함께 이름도 참…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름의 김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멸치액젓으로 버무린 고들빼기 김치를 흰 쌀밥 위에 올려 먹는 맛이 얼마나 감칠 맛인지 이것도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음~ 입안에 침이 고인당~~ ㅋ)
이 번에 내가 엄마 집에 갔더니 엄마가 나 주신다고 단술을 만들어 놓으셨다. 몸도 안좋은데 왜 이런걸 만들고 그러냐고 내가 난리법석을 떨었다.
3주전 머리를 다쳤을 때 만해도 숨도 잘못 쉬고 맥박이 떨어져 응급실로 가셨었는데…
그래도 드는 생각이 나 주신다고 단술을 만드신 걸 보니 이제 조금씩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증표 같아서 속으로는 안도의 웃음이 나왔다.
엄마의 별미를 앞으로 몇번이나 더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비행기를 탔다.